행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가 바뀔 뿐
오늘날의 행사는 참가 신청을 하는 순간부터, 현장 체크인, 세션 참여, 비즈니스 네트워킹, 그리고 행사가 끝난 뒤 남는 데이터와 관계의 연결까지, 참가자가 거치는 모든 여정이 하나의 완성된 ‘경험’이다. 하지만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국내 행사 현장은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엑셀 파일로 프린트된 참가자 명단을 보며 명찰을 일일이 찾고, 안내데스크 앞에는 세션 위치나 주차를 묻는 줄이 길게 늘어서기 일쑤였다.
(주)디퍼루트(대표 박재준)는 이 같은 현장의 병목과 불편함에 주목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행사 산업이 멈춰 섰던 2020년, 박재준 대표는 “행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기반으로 형태가 변하고 있다”는 본질을 간파하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오프라인 행사가 기약 없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불확실성 속에서, 그는 오히려 이 위기가 전통적인 오프라인 중심의 MICE 생태계를 단숨에 디지털로 전환할 수 있는 결정적 변곡점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이후 5년, 참가자 관리 솔루션 기업으로 자리 잡은 디퍼루트는 학술대회, 공공기관 행사, 기업 프로모션, 수출 박람회 등 현재 연평균 150여 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행사의 기획부터 실행, 데이터 분석까지 전 과정을 기술로 연결하는 독보적인 입지를 다진 셈이다.
위기 속에서 포착한 기회... 후발주자의 무기는 ‘시스템 안정성’과 ‘민첩함’
대다수가 시장의 소멸을 염려할 때, 그는 오히려 압축적인 생태계 지각변동 속에서 시장의 가능성을 보았다. 박재준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2020년은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대면 행사가 전면 중단되던 시기였다.
“당시 웹세미나(웨비나) 솔루션에 진입한 선발 기업들이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동시 접속자 몰림으로 서버가 터지는 등 사고가 빈번했다. 기술은 개발했지만 운영 노하우가 부족했던 것이다. 우리는 후발주자였지만, 시스템을 철저히 안정화해 시장에 진입했고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의 예견대로 사람들은 줌(Zoom)이나 구글 미트 등 화상 플랫폼에 익숙해졌고, 행사가 다시 대면으로 전환되었을 때 주최 기관들은 더 이상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효율적이고 정교한 디지털 솔루션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박 대표는 디퍼루트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현장성’과 ‘민첩성’을 꼽았다. 디퍼루트는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납품하고 돌아서는 일반적인 IT 기업과 결을 달리한다. 행사 기획 컨설팅부터 현장 키오스크 설치, 당일 돌발 변수 대응, 사후 리포트 제공까지 고객과 현장에 함께 서서 문제를 해결한다.
“대기업이나 거대 플랫폼이 분기 단위로 검토할 개선 요구사항을, 디퍼루트는 다음 주에 열릴 행사에 바로 반영한다. 현장에서 주최자가 겪는 불편을 즉시 해결해 주는 민첩함이 곧 디퍼루트만의 가장 특별한 경쟁력이다”
간단한 체크인을 탈피해 ‘참가자 행동 데이터 연결’과 ‘AI 컨시어지’로
디퍼루트가 제공하는 B2B 솔루션의 핵심은 단순히 행사를 등록받는 데 그치지 않고, 참가자의 모든 행동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하는 데 있다. 회사의 지향점 역시 ‘ 록 시스템이 아니라 참가자 경험 전체를 설계한다’는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과거에는 참가자 등록, 현장 체크인, 스탬프 투어, 비즈니스 매칭(PSA) 등을 각기 다른 업체에 맡겨 데이터가 파편화되었다. 반면 디퍼루트는 이를 하나의 통합 우산 아래 묶었다. 참가자가 알림톡으로 받은 이티켓(e-Ticket)을 현장 키오스크에 스캔해 명찰을 발급받는 사소한 프로세스부터, 수출 박람회에서의 바이어-셀러 매칭, 모바일 네트워킹 및 커피챗 신청까지 전 과정을 디지털화했다. 특히 현장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디퍼루트가 직접 개발해 적용 중인 ‘AI 컨시어지’다.
“대규모 행사장 안내데스크의 줄을 보면 ‘세션 장소가 어디냐’, ‘점심은 어디서 먹냐’, ‘주차 등록은 어떻게 하냐’처럼 반복적인 질문이 대부분이다. 행사 정보를 학습한 AI가 키오스크와 모바일로 이를 즉시 응대하면서 운영 인력의 피로도를 줄이고, 스태프들은 정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VIP 환대나 케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디퍼루트는 내부 개발 및 품질 검사(QA) 프로세스에도 AI를 적극 도입하여 작업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중소 규모 행사까지 아우르는 ‘셀프서비스 플랫폼’으로 확장
나아가 디퍼루트는 기존의 대행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시장 저변을 넓히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별도의 전문 운영 인력을 두기 어렵거나 주최자가 직접 행사를 꾸리고자 하는 이들을 겨냥한 ‘셀프서비스 플랫폼’이다.
디퍼루트가 준비 중인 셀프서비스 플랫폼은 주최자가 직접 웹페이지를 수정하고, 참가자 데이터를 관리하며, 다양한 참여형 콘텐츠까지 손쉽게 세팅해 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독형 제품이다. 복잡한 기능 설정을 익힐 필요 없이 AI에게 대화하듯 행사를 세팅하고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함으로써, 대형 행사뿐만 아니라 중소 규모의 다양한 이벤트까지 디퍼루트의 혁신적인 기술을 누릴 수 있도록 서비스의 외연을 확장할 계획이다.
“행사 데이터는 잠들면 안 된다... 글로벌 시장 향해 공생의 판 펼칠 것”
박재준 대표가 바라보는 다음 단계는 ‘행사 후 잠들어 버리는 데이터의 자산화’다.
“행사가 끝나면 누가 어떤 세션에 참석하고 어느 부스에 오래 머물렀는지에 대한 소중한 데이터들이 대부분 엑셀 파일 속에 파묻혀 잊히곤 한다. 우리는 이렇게 사장되는 참가자들의 행동 데이터를 정교하게 자산화해, 다음 행사 설계와 실질적인 비즈니스 기회 창출로 직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나아가 기술적으로는 언어나 QR 코드조차 필요 없는 ‘안면 인식 입장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이러한 기술적 완성도와 팬덤·참가자 경험 Design을 결합한다면, K-POP, K-뷰티처럼 한국의 행사 운영 경험 역시 독보적인 수출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박 대표는 한국 MICE 산업 내 테크 기업 간의 ‘공생’을 강조하며 인터뷰를 매듭지었다.
“미국은 시벤트(Cvent) 같은 거대 마이스테크 기업이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한국은 이제 막 테크 기반 기업들이 생태계를 형성해 가는 단계다. 동종 업계끼리 소모적인 파이 싸움을 하기보다는, 다 함께 판을 키워 MICE 산업 전체를 세련되고 즐거운 문화로 바꿔야 한다. 디퍼루트는 한국 MICE의 디지털 혁신을 이끄는 가장 든든하고 유연한 파트너로서, 아시아·태평양 시장을 시작으로 글로벌 무대에 도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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