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이진희] 흔들리는 믿음과 종교계의 자정능력

▲이진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기자]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종교계 사건들을 돌아보면 개별 사안은 다르지만, 대응 방식에서 공통점이 드러난다. 그것은 신앙공동체가 조직내 권력자나 가해자를 보호하고 가시화된 문제마저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은폐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여신도에 대한 성범죄 혐의로 교주가 이미 실형을 확정받았음에도 추가 피해자들의 고발이 이어지는 것은 범죄를 가능케 한 시스템이 여전히 종교 내에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이는 교주 개인의 일탈과 범법을 넘어 조직적 폭력임을 보여준다. 선교회 산하 합창단에서 벌어진 10대 소녀의 사망사건은 신앙공동체 내부의 폐쇄적 합숙생활 속에서 아동학대가 오랫동안 은폐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또한 종교계의 정치권에 대한 로비 의혹 역시 종교인이 세속적 권력 앞에서 얼마나 쉽게 본연의 숭고한 소명을 저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최고위 승려들의 도박 의혹과 종단의 실권을 쥔 이른바 권승들이 산하재단시설을 도박장처럼 이용하고 금전수수를 했다는 폭로가 나왔고, 이를 문제 삼으려던 승려가 오히려 집단폭행을 당해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렸다는 증언까지 이어졌다.

 

여성 신자를 신부가 감금한 채 새벽까지 성폭행하려 위협한 사건이 벌어졌으나 피해 여성은 파장이 두려워 7년간 침묵하다 미투운동 확산에 힘입어 폭로, 신부가 직무정지되는 사건도 있었다. 종교법인이 대학병원 앞 문전약국을 면허대여약국 형태로 20여년간 운영하며, 요양급여, 국고보조금 등 약 2,000억 원이 넘게 부당수령한 혐의로 최근 기소되었고, 기소 이후에도 명의만 바꿔 정상 영업을 계속하고 있어 비난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대형 교회 목회자의 횡령, 재산 은닉 등과 사건들은 잊을 만하면 반복되어져 왔다. 개별 사건의 양상은 다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비슷한 구조가 자리한다. 견제받지 않는 절대권력, 폐쇄적인 조직문화, 불법행위에 대해 신앙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침묵의 강요이다.



▲사바하 포스터(필자 이진희 제공) ⓒ한국공공정책신문


  

결국 위의 종교들에서 문제의 본질은 동일하다. 신앙이라는 이름의 절대적 권력이 외부의 감시나 내부의 견제 없이 한 사람 혹은 소수의 권력자에게 집중될 때, 언제든지 남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계의 타락이 유독 뿌리 깊게 반복되는 이유는 종교조직이 갖는 특수성에 있다. 첫째, 신앙공동체는 신도의 정신적, 영적 영역까지 관여하기 때문에, 종교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일반적인 사회적 신뢰보다 절대적이고 이는 종종 그들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무력화시킨다. 둘째, 많은 종교조직은 세금이나 회계, 인사 등에서 외부 감시로부터 상당 부분 자유롭다. 셋째, 공동체 내부에서 믿음을 강조하면서 피해자나 내부고발자가 올곧은 목소리를 내려 해도, 문제 제기 자체를 죄악시하고, 오히려 문제를 은폐, 왜곡하거나 가해자를 감싸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첫째, 재정 투명성을 제도화하여 외부 회계감사를 정기적으로 받고 그 결과를 신도와 사회에 공개해야 한다. 둘째, 내부 견제 장치의 구축을 통해 권한이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신도가 참여하는 감독기구나 독립적인 윤리위원회를 상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셋째, 피해자 보호와 신고 체계의 정비를 통해 독립적인 신고·상담 창구를 마련하고,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을 엄격히 금지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넷째, 언론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대형사건이 터졌을 때만 반짝 이슈화할 것이 아니라, 재발 방지 조치가 실제로 이행되는지를 끝까지 추적하고 감시하며 언론과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다섯째, 무엇보다 신앙공동체의 자정노력을 통해 건강한 종교 공동체는 지도자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신앙의 결핍으로 몰아 공격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는 책임으로 겸허하게 수용해야한다는 대전제하에 내부에서부터 개혁이 시작되어야 한다.

종교는 유한한 인간이 한계를 자각하고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고자 할 때 기대는 마지막 언어다. 그 언어가 힘을 잃어가는 작금의 사태는 교리가 낡아서가 아니다. 그 언어를 매개하는 조직과 사람이 감시와 견제라는 세속의 원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제 종교가 본연의 성스러움을 되찾는 길은 스스로를 낮추어 세속의 투명성과 책임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데 있다. 절대적 권위를 내려놓고 감시와 견제 앞에 겸허히 서는 종교만이, 흔들리는 믿음 속에서도 다시 신도와 사회의 믿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한국 종교에 필요한 것은 방어가 아니라 성찰이며, 침묵이 아니라 개혁이다.


 이진희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교육학박사)

(현) 진해세화여자고등학교 교장

(전) 서울대학교 강사

(전) EBS 수능윤리 강사



작성 2026.09.06 21:28 수정 2026.09.0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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