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시인 한정찬의 그 눈빛 외 4편
그 눈빛
사람을 만난다.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그 눈빛 속에
잠시, 나를 내려놓는다
눈앞에서 지구 반대편의
낯선 거리에서 말은 들리는데
마음이 닫혀 있는 것을 본다.
웃음 울음 뒤에 감춰진
침묵은 아무에게도 건네지 못한
그 눈빛의 슬픔을 바라본다.
눈동자 가장자리에 고인 마음의
그 눈빛이 정지되어 있을 때
나는 그것을 잊지 못한다.
두 손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을
가슴 한쪽을 천천히 쓸어 담아도
늘 돌아오는 건 빈손뿐인
그 눈빛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내는 일이 아니라.
끝내 알 수 없어 차마 잊지 못한 채
가슴에 품고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사람을 만난다.
말보다 먼저 눈을 바라보고
내 마음에 가만히 담아 둔
그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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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비 오는 날에는
파리도 거미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미 젖은 거미줄은 더는 덫이 아니다.
허공에 걸린 늘어진 작은 그네에
파리는 그 위에 앉아 날개를 말린다.
빗방울에 파리의 몸도 조금씩 흔들린다.
살아 있다는 것은 두려워하던 것 곁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다.
비 그치면 거미는 끊긴 줄을 잇고,
파리는 먼저 어디론가 날아갈 것이다.
비 오는 동안은 거미줄과 파리가
덫도 먹이도 아닌 채,
허공에 매달려 아무 일 없을 것처럼
공존으로 함께 흔들린다.
한 송이 꽃
꽃에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있다.
꽃의 이마에는
먼저 새겨진 이름은 없고
환희 핀 것
희나리가 된 것
마침내는
한 몸에서 녹는다.
너를 비추는 꽃이
나의 눈에 온전히 빛났으니
내가 한껏 낮추는 일은
온 누리를 정화하는 일이다.
삶이란
높이 오르는 계단이 아니라
서로의 얼굴에서
같은 처지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사랑은
침묵 속에서도
서로를 사람이라 부르는
가장 오래된
한 송이 꽃이다.
윤회(輪回)
그대 마침내 떠났으나
그 떠남은 머물고 있다.
한 번의 아쉬운 이별은
다음 생의 문턱을 밟아
발자국을 오래 남겼다.
나는 상실을 곧추세워
넘어지지 않는 나무처럼
늘 그대 이름을 외운다.
침묵은 그저 드러내지 않고
다시 피어날 희망 품은
깊고 차진 흙이었다.
눈물은 강이 되고
강은 바다가 되어
다시 구름으로 온다.
헤어짐은 마땅히
돌아오기 위해 흩어지는
한 생의 곧은 숨결이다.
절망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실한 뿌리를 내리고,
사랑은 끝내
한세상을 넘어
모든 생명의 빛이 된다.
님은 침묵 속에 있고
나는 그 침묵을 지나
다시 나를 만난다.
님의 사랑
사랑은
붙잡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을
끝내 남기는 일입니다.
떠남은
거리를 만들 뿐,
마음은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리움은
침묵의 자비가 되고,
나는
당신이 없는 곳에서
가장 깊이
당신을 만납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비워질수록
더 환해지는
그 사랑은
거룩한 그대입니다.
한정찬
□ (사)한국공무원문학협회 고문, (사)한국문인협회원, (사)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 시집 ‘한 줄기 바람(1988)외 29권, 한정찬시전집 2권, 한정찬시선집 1권’ 외
□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