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양세훈] 폭염의 시대, ESG는 더 이상 구호가 아니다

▲양세훈/한국공공정책신문 논설위원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체감온도를 넘어 실제 관측 기온 40℃ 이상이 잇따르며, ‘역대 최고기온 경신’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를 보고서 문구나 경영 유행쯤으로 취급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ESG는 기업의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 전략이며, 기후 위기에 맞서는 최소한의 문명적 장치다. 기후는 더 이상 환경부의 의제만이 아니고, 재난은 더 이상 일시적 사고가 아니다. 폭염, 가뭄, 산불, 집중호우는 산업과 복지, 교통과 보건, 농업과 지역경제를 동시에 흔드는 복합적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ESG를 미뤄두는 것은 곧 위험을 방치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세계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지속가능성 공시지침(CSRD), 공급망 실사지침(CSDDD)를 통해 기업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얼마나 벌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벌었는가를 말하라고 요구한다. 탄소를 얼마나 줄였는지, 협력업체의 노동과 환경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재난과 안전에 얼마나 대비했는지가 시장의 진입 조건이 되고 있다. ESG는 선택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관문이 되었다. 이제 국제 규범은 ‘착한 기업’에 점수를 주는 수준이 아니라, 지속가능하지 않은 기업은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는 구조로 시장을 바꾸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정부는 ESG 인프라 고도화 방안을 내놓고 공시체계 정비, 중소기업 지원, 공공기관 ESG 확산을 추진해 왔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문제는 속도와 깊이다. 한국의 ESG는 여전히 ‘준비 중’이라는 말 뒤에 머물러 있고, 실제 현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 본사와 협력사 사이의 단절, 선언과 실행 사이의 간극으로 가득하다. 보여주기식 ESG, 체크리스트식 ESG로는 폭염도, 공급망 위기도, 국제 규제도 막아낼 수 없다. 게다가 ESG는 기업만의 숙제가 아니다. 공공부문이 움직이지 않으면 민간은 결국 따라오지 않는다.

 

특히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정부는 기준을 만들고 예산을 배분하며, 공공조달과 세제, 금융정책을 통해 시장의 방향을 틀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폭염 대응, 에너지 전환, 취약계층 보호, 지역 순환경제를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주체다. 공공기관은 지역과 산업 현장을 연결하는 실질적 거점으로서, 단순한 보고서 작성자가 아니라 변화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공공기관이 에너지 절감, 녹색구매, 안전관리, 협력업체 상생, 정보공개를 선도해야 민간도 뒤따른다. 공공부문이 앞장서지 않는 ESG는 설득력이 약하다. 국민에게 책임을 요구하려면, 먼저 국가가 책임을 보여야 한다.

 

이제 한국 ESG 정책은 분명히 재정렬되어야 한다. 첫째, 공시를 늘리는 데 그치지 말고 검증 가능한 책임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이 실제로 따라올 수 있는 데이터, 자금, 기술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셋째, ESG의 중심을 기후 적응과 산업안전으로 옮겨야 한다. 폭염은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가뭄은 식량과 물 안보를 흔들며, 홍수와 산불은 지역경제를 무너뜨린다. 넷째, 공공부문이 단순한 감독자가 아니라 선도적 실행자가 되어야 한다. 행정이 먼저 바뀌고, 지방정부가 먼저 움직이며, 공공기관이 먼저 성과를 보여줄 때 ESG는 비로소 구호를 벗는다. 이런 시대에 ESG가 탄소 몇 줄, 숫자 몇 개로 끝난다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자기기만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ESG는 기업홍보의 장식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리스크 관리 체계여야 한다. 대한민국이 진짜로 지속가능한 국가가 되려면, 이제는 말이 아니라 제도로, 선언이 아니라 집행으로, 홍보가 아니라 성과로 답해야 한다. 폭염의 시대에 ESG를 가볍게 여기는 사회는 결국 가장 먼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기업만이 아니라, 지방정부와 공공기관, 나아가 국가 전체가 함께 치르게 된다.




양세훈

∙ 행정학박사

∙ 한국공공정책신문 논설위원

∙ 한국공공ESG학회 부회장

∙ (前) 한신대학교 초빙교수




작성 2026.08.03 09:05 수정 2026.08.0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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