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상 칼럼] 방위산업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순천이 만들어야 할 것은 '방산도시'가 아니라 '전남 동부권 산업혁신 방위산업 플랫폼'이다

영국 셰필드가 던진 질문, 순천은 ‘방위산업’이라는 수단을 어떻게 쓸 것인가

 

지역소멸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인구는 줄고 청년은 떠나며, 기업은 수도권으로 몰린다. 지방정부들은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산업 유치 경쟁에 뛰어들고 있고, 최근에는 방위산업 역시 지역경제 회생의 유력한 카드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흐름에 편승하기 전에 반드시 짚어야 할 전제가 있다. 방위산업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이 방위산업을 유치하려는 이유는 전차나 미사일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산업이 지역경제에 만들어낼 일자리와 기술, 생태계 때문이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순간, 방위산업 유치는 구호에 그치고 만다. 순천이 지향해야 할 방향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순천이 무기 완제품을 생산하는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광양·여수를 포함한 전남 동부권 산업을 하나로 엮어내는 방위산업 플랫폼이자 컨트롤타워가 되는 길이다. 이는 결코 이상론이 아니다. 이미 세계에는 이 전략을 성공적으로 증명한 도시가 있다. 영국 셰필드다.

양현상 박사 
(국방융합기술연구소장,홍익대 국방AI융합학과 초빙교수 )

셰필드가 보여준 것: '산업의 전환'이 아니라 ‘기술의 진화’

영국 셰필드는 오랫동안 세계 철강산업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철강산업의 쇠퇴는 곧 도시의 쇠퇴로 이어졌다.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늘면서 지역경제는 급격히 무너졌다. 많은 쇠퇴 도시가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산업을 외부에서 통째로 들여오려 했다. 하지만 셰필드의 선택은 달랐다. 철강을 버리는 대신, 철강 기술을 진화시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기존 제철 기술은 항공우주용 특수강, 티타늄 합금, 정밀가공, 첨단소재 기술로 발전했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이 함께 연구개발을 추진하면서 셰필드는 세계 항공우주·방위산업 공급망의 한 축으로 편입됐다. 결국 셰필드가 만든 것은 몇 개의 방산기업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생태계였고, 그 생태계는 지금도 글로벌 기업과 기술, 인재를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스스로 재생산하고 있다. 이 사례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지역이 살아남는 방식은 산업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보유한 기술 기반을 다음 단계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순천은 방산도시가 아니라 '플랫폼 도시'가 되어야 한다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방산기업 유치를 이야기하지만, 기업은 구호를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은 기술이 있는 곳, 사람이 있는 곳, 연구개발이 가능한 곳으로 온다. 그렇다면 순천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방산기업 유치가 아니라 산업생태계 조성이다. 그 중심에 순천이 있어야 하지만, 순천 혼자만의 산업으로 완결되어서는 안 된다. 순천은 전남 동부권 전체를 연결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야 한다. "순천이 방위산업을 하겠다"가 아니라 "순천이 전남 동부권 방위산업 플랫폼을 이끌겠다"는 전략적 언어의 차이가, 실제 정책의 방향과 예산 배분, 기업 유치 전략 전체를 바꿔놓는다.

 

모든 것은 '지·산·학·연'에서 시작된다

지역산업은 어느 한 기관의 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방정부가 예산만 투입한다고 생기지 않고, 앵커기업 하나가 들어온다고 완성되지도 않는다. 산업은 결국 지·산·학·연 협력체계 위에서 성장한다. 지·산·학·연 협력체계를 살펴보면, 순천시는 컨트롤타워로서 전체 전략의 방향을 제시하고, 광양·여수의 기업들은 생산기반을 제공하며, 국립순천대학교·순천제일대학교·청암대학교는 산업 현장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서남본부 순천센터와 전남테크노파크는 기술개발과 사업화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 이 네 주체가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지역 산업생태계가 완성될 수 있다. 이 네 축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이후의 모든 계획은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 결국 사람과 기술, 그리고 협력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출발점은 '특수합금'이어야 한다

산업정책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순천과 전남 동부권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은 광양만권의 철강산업 기반이다. 따라서 방산 생태계 역시 기존 산업과 가장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분야, 즉 특수합금과 첨단소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항공기, 함정, 미사일, 우주산업은 일반 철강이 아니라 고성능 특수합금과 고기능 소재를 필요로 한다. 관련 역량을 갖춘 지역 기업들이 이 분야의 중심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예컨대 현대IFC와 같은 제조기업이 특수합금 분야의 앵커기업 역할을 수행한다면, 외부 협력기업과 소재기업의 자연스러운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생태계는 기업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업들이 모이고 연결될 때 비로소 생태계가 된다. 그리고 일정 규모의 공급망이 형성되는 순간, 항공·함정 분야 앵커기업의 생산시설을 유치할 현실적인 기회도 열린다. 산업은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끌어당기는 것이다.

 

AI·디지털 기술이 더해질 때 진짜 경쟁력이 생긴다

미래 방위산업은 더 이상 단순한 무기 제조업이 아니다. AI, 소프트웨어, 드론, 센서, 자율제어, 디지털 트윈, 스마트팩토리, 국방 데이터 기술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순천의 방산 전략 역시 제조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특수합금과 첨단소재를 기반으로 AI·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미래형 산업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 지점에 도달하면 방산을 넘어 우주항공, 미래모빌리티, 에너지산업까지 확장되는 융합산업 기반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이다.

 

방위산업이 남겨야 하는 것은 공장이 아니라 생태계다

창원이 대한민국 대표 방산도시가 된 이유는 수백 개의 협력기업과 연구기관, 대학, 전문인력이 함께 성장하며 하나의 산업생태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순천도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다만 경쟁의 방식은 달라야 한다. 완제품 생산도시를 꿈꾸기보다, 첨단소재·정밀가공·AI·디지털 국방기술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순천이 이끄는 전남 동부권 방위산업 플랫폼이 자리해야 한다. 방위산업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목적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이고, 청년이 돌아오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며,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방위산업은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영국 셰필드가 철강이라는 전통산업을 첨단 항공우주·방위산업으로 진화시켜 도시를 다시 일으켜 세웠듯이, 순천도 광양만권의 산업 기반과 전남 동부권의 역량을 하나로 연결한다면 새로운 성장의 길을 열 수 있다. 순천이 만들어야 할 것은 방산기업 몇 곳이 아니다. 산업과 기술,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그리고 그 플랫폼이 완성되는 순간, 방위산업은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것이다.

작성 2026.07.16 23:36 수정 2026.07.2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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