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정부가 수도권 중심의 반도체 산업 구조를 탈피하고 국가 균형발전과 공급망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반도체 다극화' 정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기존 경기 용인·평택 중심의 메가클러스터를 넘어 호남과 충청을 연결하는 새로운 반도체 산업벨트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정책이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새로운 성장축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는 평가와 함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도권 한계…비수도권 확장이 불가피
정부가 반도체 생산기지를 지방으로 확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도권의 물리적 한계 때문이다.
현재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 공급과 공업용수 확보, 환경영향평가 등에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공장(Fab) 한 곳을 운영하는 데 막대한 전력과 용수가 필요한 만큼 수도권만으로는 장기적인 산업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수도권 일극 체제를 벗어나 지역별 특성을 살린 다극화 산업 구조를 구축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호남에 친환경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추진
정부는 서남권을 차세대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계획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투자를 통해 반도체 생산시설 구축을 추진하고, 광주·전남 지역은 군 공항 이전 예정 부지를 활용한 첨단 산업단지 조성이 검토되고 있다.
특히 호남지역의 풍부한 태양광과 해상풍력, 원전 전력을 연계한 무탄소 에너지(CFE) 기반의 친환경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이 핵심 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다.
충청권은 후공정·소부장 중심 벨트 구축
충청권은 수도권과 호남을 연결하는 핵심 산업벨트 역할을 맡는다.
천안·아산·청주 등 기존 반도체 산업기반을 활용해 패키징(OSAT)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으며, 인허가 절차 단축과 산업단지 확장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충청권이 반도체 공급망의 허리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특별법 제정으로 속도전
정부는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기 위해 메가특구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특별법에는 규제 특례와 세제 지원, 각종 보조금 확대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며, 대통령실에도 반도체·AI·로봇 등 국가 전략산업을 전담하는 조직을 운영해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성공 위해 넘어야 할 5대 과제
▲ 생산공장만 지방 이전 우려
전문가들은 공장만 지방으로 이전하고 연구개발(R&D)과 본사 기능은 수도권에 남는 이른바 '공간적 하청화'를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지적한다.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산업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전력·용수 인프라 구축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전력과 공업용수를 필요로 한다.
송전망과 광역 용수 공급시설 구축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조기 인프라 확충 여부가 사업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 지역 갈등 최소화
대규모 국책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역 간 갈등이나 부정적 여론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의 지방 분산이 특정 지역 지원이 아니라 국가 공급망 안정과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이라는 점을 적극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 노동·환경 규제와 사회적 합의
정부는 투자 활성화를 위해 일부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으나 노동계와 환경단체의 우려도 적지 않다.
산업 경쟁력과 노동권·환경 보호 사이에서 균형 있는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 인재 확보와 정주환경 개선
첨단 반도체 산업은 우수 인재 확보가 핵심이다.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국제학교, 종합병원, 문화시설, 주거 지원 등 생활환경 개선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인력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 "속도보다 생태계 구축이 중요"
전문가들은 비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단순한 공장 이전 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국가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장의 조기 착공만을 목표로 하기보다 연구개발 기능과 기업, 대학, 연구기관이 함께 성장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안정적인 전력망과 용수 공급, 정주환경 개선까지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반도체 다극화' 전략은 국가 공급망 안정과 균형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겨냥한 대형 프로젝트다. 향후 정책의 성패는 투자 규모보다 인프라 구축, 인재 확보, 지역 혁신 생태계 조성이라는 내실을 얼마나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정찬
· (전)서울시의회 의원, 서울시의회독도특위위원장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 서울남부지방법원조정위원
· 서울대 인문정보연구소 AI 전문강사
· 저서 : 「지방의회 운영실무」 (202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