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이진희]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을까?

▲이진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독특한 제목의 드라마가 입소문을 타고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주인공 황동만(구교환 분)은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함께 대학을 다녔던 영화동아리 8인회 멤버 중 한명이다. 모두가 영화인이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같이 출발했건만 그중 유일하게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못한 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이가 바로 황동만이다. 강사로 일하는 학원에서조차 수강생이 줄어들어 해고 위기에 처하게 되고, 사채업자의 독촉 전화에 시달린다. 혼자만 낙오된 것 같은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은 그의 일상에서 뾰족한 행동으로 드러나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는 영화계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며 선후배들에게 초치는 말을 일삼는다. 잘 나가는 동료들의 영화를 조목조목 따져가며 애써 허물을 찾아 댓글을 쓰고 작품에 흠집을 내려고 혈안이다. 좋은 영화를 보면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시샘과 질투에 이불킥을 하면서 밤잠을 설친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제어장치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천방지축 날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조용히 있어?”라고 떠들어 댄다. “내가 왜 니 맘에 들어야 하는데요? 라고 하면서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절제 없이 다 뿜어내기에 동료들 사이에서는 따돌림을 받는 철저한 주변인으로 각인되어 있다. 동료의 성공은 자신의 실패를 절감하게 하고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한 확인 사살이었기 때문에 발을 동동 굴리며 살아있음을 드러내고자 그는 마구잡이식으로 죽어라 떠들어 대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의 무가치함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현대인 모두의 고통일 것이다. 현대의 불행과 결핍은 절대적 부족이 아니라 상대와의 비교에서 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열려 있는 인터넷 세상에서 SNS를 열 때마다 볼 수 밖에 없는 남들의 화려한 하이라이트 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자신의 현 위치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그들의 삶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열등감, 컴플렉스, 자괴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괴로워하는 인간들의 밑바닥 감정, 그 기저에 깔린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다.

 

처음에 밉살스러웠던 동만이 자신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택한 수다스러운 생존 방식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그에게 안쓰러움과 짠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밉상질 끝판왕인 황동만을 우리는 미워할 수만은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황동만이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 속에서 존재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것은 황동만만이 아니다. 영화계에서 성공한 사람, 덜 성공한 사람, 아예 성공하지 못한 사람 등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낄 때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싸움을 힘겹게 전쟁처럼 치르고 있다. 과거의 상실에 아파하면서, 목표를 이루지 못할까 봐서 불안하고, 자신의 실패와 초라함이 들킬까 봐 불안하고, 이 세상에서 흔적없이 사라질까 봐 불안하고,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외면받고 버려질까 봐 불안하다.

 

이런 불안함을 직접 마주하고 정면돌파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우회적인 방법으로 드라마 속 그들은 견뎌내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만만한 이에게 시비를 걸고 허세를 부리고 잘 나가는 이를 깍아 내리지못해 안달을 내고, 누군가는 조용히 참고 현실을 순응하며 때로는 답답한 상황을 회피한다. 또 누군가는 술로 일상을 버티고 세상사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거나 평범한 일상과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 밖의 있는 우리 인생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세상은 황동만의 목소리를 소음이라 깔아뭉개고 그의 인생을 실패와 불행이라 이름붙이려 한다. 하지만 그의 불안과 잠재성을 알아본 여주인공의 등장은 황동만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아마도 이 두 남녀가 서로를 구원하는 서사로 스토리는 이어 나가지 않을까?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엔딩에서 힘차게 도약하는 발레리노를 보며, 두 주먹 불끈 쥐고 힘 있게 ‘브라보’를 외친 황동만, 그런 그가 자신의 불안을 떨쳐내고 그녀와 함께 빛나는 인생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가슴 벅찬 이야기를 어떻게 펼쳐나가는지 이제 지켜보자.  


▲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한국공공정책신문








이진희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교육학박사)

(현) 진해세화여자고등학교 교장

(전) 서울대학교 강사

(전) EBS 수능윤리 강사




작성 2026.05.17 18:18 수정 2026.05.1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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