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사득환] 5극3특 시대, 행정통합은 ‘다층형 분권국가’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사득환/경동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대한민국의 국가공간 전략이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수도권 일극체제를 완화하고 국가경쟁력을 다극적으로 재편하겠다는 ‘5극 3특’ 구상은 단순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아니다. 이는 중앙–광역–기초로 이어져 온 기존의 단선적 행정체계를 넘어 국가내부의 권한과 책임을 다층적으로 재배치하려는 구조적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논의되고 있는 충남–대전, 전남–광주, 부산·울산·경남, 경북–대구의 행정통합은 ‘광역단위의 경쟁력 강화’를 넘어 대한민국을 다층형 분권국가로 전환하는 제도적 디딤돌로 해석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지방자치는 제도적으로는 분권을 지향해 왔지만 실제로는 중앙집권적 정책결정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재정권한과 핵심 정책결정은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었고, 광역자치단체는 중앙정책을 집행·조정하는 중간 행정단위로 기능해 왔다. 이로 인해 지역은 스스로의 여건에 맞는 발전전략을 설계·집행하기 어려웠고, 지역 간 경쟁력 격차 또한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왔다.

 

행정통합은 왜 단순한 통합이 아닌가


최근 급격히 논의되는 광역 행정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조정이나 조직통합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내부의 권한구조를 ‘단층형 국가운영’(unitary government)에서 ‘다층형 분권구조’(multilevel governance)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층형 분권국가란 중앙정부, 통합 광역정부, 기초정부가 각각의 수준에서 고유한 기능과 책임을 분담하며 상호 조정·협력하는 국가운영 모델이다. 핵심은 주권의 분할이 아니라 기능·재정·책임의 합리적 배분이다.


충남과 대전의 통합은 행정과 과학기술, 산업정책의 결합을 통해 중부권 핵심 성장축을 형성할 수 있고, 전남과 광주의 통합은 에너지·농생명·AI를 연계한 서남권 전략거점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크다. 부울경과 대구·경북 역시 해양·제조, 첨단산업·물류를 중심으로 한 광역경제권을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통합은 단순히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정책설계와 집행의 단위를 국가내부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다층형 분권국가로의 전환이 관건이다


문제는 행정통합이 단순히 도청·시청을 합치고 조직을 재편하는 ‘행정효율화’ 수준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지방자치의 질적 전환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있다. 만약 통합 이후에도 재정권한과 핵심 정책결정권이 중앙에 집중된 상태가 유지된다면, 행정통합은 지역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또 하나의 실험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통합 광역정부가 산업, 환경, 교통, 복지, 공간계획 등 지역밀착형 정책영역에서 실질적인 자율성과 책임을 부여받는다면 이는 대한민국이 다층형 분권국가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층형 분권국가는 중앙정부 권한의 약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앙정부는 국가안보, 외교, 거시경제, 통화, 국가적 위기관리와 같은 핵심기능에 집중하고, 통합 광역정부는 지역 발전전략과 주민의 삶의 질에 직결되는 정책을 책임지는 구조이다. 이는 오츠(Oates)의 ‘분권정리(Decentralization Theorem)’에서 보듯이 정책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제고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5극 3특은 이러한 역할분담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정책적 틀이다.

 

통합을 조정할 국가적 추진체계가 필요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개별 지역의 자발적 논의를 넘어선 범정부적·통합적 추진체계다. 총리실 산하에 ‘(가칭)행정통합위원회’를 설치해 각 권역의 통합논의를 국가전략 차원에서 조정·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 기구는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 재정특례 설계, 권한이양, 법·제도 정비를 종합적으로 조율하는 컨트롤타워여야 한다.


동시에 6.3 지방선거 등 촉박한 정치적·법적 일정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 차원에서는 주민참여와 사회적 합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다층형 분권국가는 위로부터 설계되는 제도이자 아래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해야 지속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행정통합은 결국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하나의 중심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국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다수의 책임있는 지방정부가 국가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다층형 분권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의 선택은 향후 수십 년간 한국 지방자치와 국가운영의 방향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사득환 / 행정학박사

경동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한국공공ESG학회 회장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 부회장

행정안전부 혁신과제평가위원



작성 2026.01.30 17:16 수정 2026.01.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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